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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마츠모토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

2026년 6월 18일 ~ 8월 14일

위치

화이트 큐브 서울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6

‘어둠은 하얀색, 푸른색, 심지어 분홍색일 수 있으며, 빛과 어둠은 불가분한 관계이기에 아크릴과 유화 작품에서 모두 빛과 어둠의 교차를 지향한다.’

— 요코 마츠모토

요코 마츠모토 개인전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는 1985년 이후의 회화와 드로잉을 중심으로, 빛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를 조명한다. 평생 동양과 서양의 예술 세계를 넘나들며 회화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는 먹물과의 유사성에 이끌려 수성 아크릴 작업에 몰두하던 시기를 거쳐, 서양미술사의 핵심 매체인 유화로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요코 마츠모토의 작업은 빛과 깊이를 부여하며 캔버스의 표면을 변화시키는 회화적 매체의 가능성과 색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어둠은 하얀색, 푸른색 심지어 분홍색’일 수 있으며, ‘빛과 어둠은 불가분한 관계이기에 아크릴과 유화 작품에서 모두 빛과 어둠의 교차를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미술사학자 레이코 토미이의 글은 일본의 모더니즘이 남긴 부정적인 유산과 1950년대 도쿄에서의 미술 교육, 그리고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접한 추상표현주의의 만남을 아우르며, 요코 마츠모토의 예술적 탐구를 보다 폭넓은 맥락 속에서 조명한다.

요코 마츠모토의 빛에 대한 탐구  
레이코 토미이 

그림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화가인 지인이 내게 대다수의 사람은 그림을 감상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며, 추상화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에서 활동하는 화가 요코 마츠모토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에 거주하는 나는 그의 작업을 직접 보러 몇 차례 전시에 가보았지만,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그 안에서 작가의 진정한 면모를 발견할 만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의 작품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유화와 아크릴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모두 능숙히 다룰 뿐 아니라, 각 매체를 통해 빛을 탁월하게 구현해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그의 작품이 놀라웠던 이유는 그동안 ‘빛’이 일본의 근대 유화, 더 나아가 일본의 ‘요가(yōga; 서양식 회화)’ 장르 전체에서 결여된 요소로써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수백 년에 걸쳐 서양의 주된 매체로 사용되던 유화는 일본이 근대화를 기치로 급속한 서구화를 추진하던 19세기 중반에 유입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화로 빛을 포착하며 세계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한 획을 그었지만, 일본의 근대 화가들은 이 낯선 매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같은 일본 근대 미술사의 한계를 요코 마츠모토는 두 가지 시도를 통해 뛰어넘었다. 먼저 그는 1970년대 중반에 ‘핑크’ 연작을 선보이며 수성 매체인 아크릴을 통해 빛을 표현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이후 2000년대로 들어서며 작가는 빛을 구현한다는 목표는 그대로 유지하되, 매체를 유화로 전환하며 ‘그린’, ‘블루’, ‘화이트’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요코 마츠모토의 작품 세계는 독자적인 창작을 통해 일본 근대주의가 남긴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자 했던 작가의 집념과 비전을 보여준다. 일본 근대 회화의 형성 과정에서 노출된 중요한 과제를 두고 씨름한 그에게, 이들 연작은 그 고민들의 결실이다.  

일본의 근대 화가들에게 유화는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동아시아 회화에서 안료를 섞는 매재는 전통적으로 물이었고, 수성 재료의 위상은 르네상스 이래 서양 미술에서 유화 물감이 차지한 지위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물에 갈아 섞어 먹물을 만들어 내는 먹은 섬나라 일본의 습한 기후에 맞는 표현 수단이었고 수 세기 동안 극동에서 애용됐다. 그로 인해 15세기 선승 셋슈의 <파묵산수도(破墨山水圖, 1495)>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근대 일본에서 서양식 회화를 추구했던 이들은 서구에서 들여온 낯선 전통과 유화 특유의 점성에 적응하지 못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국제 사회에 재편입된 이후,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였던 아쓰오 이마이즈미는 1951–52년에 유럽의 모더니즘을 연구하고 일본의 동시대 회화를 현지에 소개하고자 파리와 베니스 등지를 방문했다. 그는 이 방문 이후 유럽 화단에 비해 일본 화단의 작품성이 매우 열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며, 귀국 후 ‘탁하고 서툴다’라는1 단 두 형용사로 일본 유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의 눈에 일본의 서양식 회화는 마치 흙탕물을 뒤덮은 듯했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근대성을 ‘서투르게’ 흉내내는 데 그친 평작으로 비춰졌다. 당시 그들은 국제 미술의 만국 공통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요코 마츠모토는 일본 최고의 미술학교로 알려진 도쿄예술대학에서 1956년부터 1960년까지 수학했다. 학교 교육은 보수적이었고, 무겁게 채색된 누드화로2 꽉 찬 강의실이 작가에게는 우울하게만 느껴졌다. ‘세상이 아름다운 색채로 충만한데 왜 저들은 저토록 탁한 색만 쓰는가!’하고 탄식하며,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였다. 투명한 색채로 부유하듯 가벼운 추상을 그리고 유화로 빛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는 여러 종류의 오일을 시험해 봤지만, 처음에는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유화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분홍은 하나같이 ‘불투명하고, 무겁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것은 단지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손을 움직여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1960년에 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서양 유화의 전통이라는 무게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1967년 6월, 요코 마츠모토는 미술 평론가 테루오 후지에다와 결혼했다. 신혼부부는 곧이어 미국으로 이주해3 그해 연말 즈음 뉴욕에 정착했다. 그는 도시의 미술관에서 과거 사진으로만 접했던 근대 미술의 걸작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과 마티스의 ‘댄스’(Dance, 1910) 등 추상표현주의4 작가들의 작품을 실물로 접하며 받은 충격으로 그는 고국에서 받은 미술 교육의 대부분을 과감히 버렸다. 특히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테레빈유로 희석한 물감을 캔버스에 스며들게 해 얼룩을 남기는 방식의 이른바 ‘소크 스테인(soak-stain)’ 기법을 고안한 헬렌 프랑켄탈러였다.5 처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프랑켄탈러의 대작 ‘산과 바다’(Mountains and Sea, 1952)를 마주했을 때,6 그는 그것이 ‘매우 얇게 채색된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느꼈고, 이후 그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매주 재방문할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작품들과 직접 대면하며, 요코 마츠모토는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의 또 다른 결정적인 발견은 리퀴텍스 아크릴 물감이었다.7 아크릴은 물과 완전히 섞일 수 있지만, 먹물과는 달리 드로잉이나 염색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물과의 친연성, 곧 먹을 연상시키는 그 성질에 이끌려 아크릴을 선택했다. 당시 그러한 결정의 동기가 되었던 수묵화가 일본 회화 전통의 정수라는 신념을 작가는 지금까지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리퀴텍스 아크릴에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특별히 그의 마음에 드는 분홍색조의 물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폴록, 뉴먼, 로스코와 같은 선배 예술가들의 작업만큼 도전적이면서도, 일본 특유의 공간에 대한 미감을 수성 매체로 구현한 ‘채색 수묵화’를 꿈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4년, 요코 마츠모토의 첫 번째 대표작들이 탄생했다. 

‘핑크’ 연작에는 흘러가는 안개나 구름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주를 이룬다. 분홍이 화면을 지배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흑색 위에 엷은 베일처럼 분홍이 드리워지기도 하고, 분홍과 흑색이 서로 경쟁하거나 뒤섞이기도 한다. 이때 분홍이 품은 빛은 주변의 어둠과 대비되며 은은하게 빛난다. 이와 같은 비정형의 추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는 수성 매체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수평으로 작업하였기에 네 모서리에는 흘러내린 물감 자국이 많다. 그리고 밝고 날 것의 느낌을 주는 자국의 색은 화면을 구성하는 절제된 색조와 극명히 대비된다. 묽게 희석된 색채를 덧바르고, 닦아내고, 층층이 쌓아올리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화면은8 작가의 노동과 집중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요코 마츠모토의 ‘핑크’ 연작에서, 빛은 물에서 이끌려 나온다.  

분홍으로부터 빛을 끌어내기 위한 작가의 집요한 탐구는 2004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해 유화로 관심을 돌리면서 새롭게 ‘그린’ 연작이 시작되었다. 30여 년간 ‘핑크’ 연작에 매진했던 작가이지만, 그는 분홍이 ‘부차적인 색(minor color)’임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9 그의 생각에 가장 중요한 색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파랑, 갈색, 초록’이었다. 작가는 ‘분홍과 보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천상의 파랑과 대지의 초록이 근원적인 색’이라고 말한다. ‘그린’ 연작은 캔버스를 벽이나 이젤에 기대어 두고 작업했으며, 따라서 ‘핑크’ 연작과는 달리 모서리에는 물감이 흐른 자국이 없다. 전체적인 화면을 뒤덮은 초록이 흑색과 대비되며 한층 부각되고, 때때로 ‘광야를 비추는 빛’(Light Shining in Wilderness, 2020)에서처럼 주황과 파랑의 흔적이 언뜻언뜻 보인다. 

비록 이 작품들은 추상화이지만, 아래로 쏟아지는 듯한 형태들은 늘어진 버드나무를 닮아 모네가 그린 지베르니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다만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후기 작품들은 붓질의 폭과 간격이 더 넓은 반면, 요코 마츠모토의 화면은 밀도가 더 높아 마치 그 안에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품고 있는 듯 깊다.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워 작업하면서 그는 유화 물감의 무게감과 밀도를 적극 수용한다. 그의 유화 작업은 캔버스 전체에 목탄 드로잉을 하며 시작된다.10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만은 어떤 직관을 따르는 듯 움직이고,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은 자국을 만드는 행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일주일 정도 지나 드로잉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작가는 ‘그곳에서 나오는 빛’을 감지하고, 이후에는 어느새 ‘목탄이 초록에게 화면으로 들어오라고 청한다’. 바로 그때 작가는 목탄 대신에 붓을 집어 들고 자신 앞에 놓인 화면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작가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파스텔 색으로 섬세한 흔적을 덧입히는데, 이로 인해 표면의 디테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보는 이들을 인도한다. 

요코 마츠모토는 추상화에서 빛을 구현하기 위해 물과 기름에 기반한 두 매체로 작업을 이어왔다. 작업의 방식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다. 수성 아크릴은 거의 즉각적인 주의와 반응을 요하는 반면, 유화는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아크릴 작품은 하루만에 완성해야 했다면, 유화는 빛과 색의 가능성이 감지될 때까지 목탄 드로잉을 반복하는 작업만 최대 일주일이 소요된다.  

목탄의 검정에서 빛과 색을 본다는 말이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고대 예술에 관한 이론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9세기 중국 당나라의 미술사가이자 이론가 장언원은 『역대명화기』에 “먹에는 다섯 가지 색이 있다”라고 기록했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알려진 이 명언은 숙련된 예술가의 손에서 먹은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요코 마츠모토가 특별한 이유는 뉴욕에서 접한 ‘행위적 추상(gestural abstraction)’에서 영감을 받은 유화 작가이면서, 동양화 특유의 묽은 성질을 지닌 서양의 신재료(아크릴)를 사용해 ‘오색’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색(핑크)으로 작업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양의 종이와 비단 대신에 서양의 캔버스를 사용했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는 건조한 대륙이나 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습한 일본의 기후를 마음에 품고 작업했다. 그의 채색 수묵화는 그의 작업 과정이 자연에 반응하며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곧 물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전통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지만 이 과정을 관통하는 인류 문명 전체가 공유하는 연결고리가 하나 있다. 바로 탄소다. 그의 작업은 두 가지 형태의 탄소, 먹과 목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목탄을 회화의 준비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은 주목할만 하다. 작가는 목탄을 형태의 기초나 작품 구성의 밑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양화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게다가 목탄 드로잉은 빛과 색이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먹물을 사용하는 동아시아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탄소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 두 재료를 통해 일본 미술계의 고질적인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여러 역사를 활발하게 교차시키는 동시대적 예술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는 두 매체에 담긴 정신과 기법을 하나로 결합하여, 눈부신 빛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과 기름이 만나는 순간, 요코 마츠모토의 화면 속에서 빛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1 아쓰오 이마이주미의 평론과 그로 인해 촉발된 논쟁에 관해서는, 유리 미쯔다의 다음 글 참조. ‘“Bijutsu hihyō”-shi (1952–1957) to sono jidai: “Gendai bijutsu” to “gendai bijutsu hihyō” no seiritsu’ [The magazine Bijutsu hihyō (art criticism) and its era: The formation of ‘contemporary art’ and ‘contemporary art criticism’], Fuji Xerox Art Bulletin 2, 2006.
달리 표시되지 않은 한, 이 문단과 인용문은 Yoko Matsumoto, Hino Gallery, Tokyo, 2007 p.190.의 ‘Shikisai to shintai-sei’ [‘색과 신체성’]의 내용에서 인용한 것이다.
3 자세한 연대기는 Yoko Matsumoto, pp.194–203 (Japanese) and pp.204–8 (English) 참고.
4 Yoko Matsumoto, ‘Intabyū’ [‘인터뷰’], Passport to Shangri-la, The Museum of Modern Art, Saitama, 2022–23, p.37.
5 Matsumoto, ‘Shikisai to shintai-sei’ [‘색과 신체성’], p.190.
6 이 작품은 현재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장기 대여 중이다.  참조.
7 이 문단은 Matsumoto, ‘Intabyū’, p.37를 토대로 작성했다.
8 요코 마츠모토의 작업 과정은 Gyararī tōku: Matsumoto Yōko x Takashima Naoyuki’, p.37; Matsumoto, ‘Shikisai to shintai-sei’ , p.191와 2024년 6월 27일 화이트 큐브 뉴욕에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 행사(이하 ‘2024년 갤러리 토크’)의 내용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9 Matsumoto, ‘Intabyū’, p.38
10 그린’ 연작의 작업 과정에 대한 서술은 2024년 갤러리 토크 행사에서 작가가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전시 전경

주요 작품

Yoko Matsumoto

Just Before Dawn, 2025

Yoko Matsumoto

Light Shining in Wilderness, 2020

Yoko Matsumoto

Out of the Atmosphere, 2003

Yoko Matsumoto

Painterly Imagination, 2019

Yoko Matsumoto

Untitled, 1990

Yoko Matsumoto

Private Botanical Dictionary, 2025

Yoko Matsumoto

Night, 2021

Yoko Matsumoto

Gazed at by Nature, 2023

요코 마츠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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