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라인간츠
편린
2026년 9월 1일 ~ 10월 24일
청담 나이트 야간 개장: 2026년 9월 2일 (수), 18:00 – 22:00
마리나 라인간츠의 풍경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사진적 기록과 회화적 탐구, 직물의 시각적 요소, 그리고 브라질 교외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이 축적된 고유한 아카이브로부터 기인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아카이브에서 출발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보고, 감각하고, 기억한 것들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풍경이 탄생한다. 물감을 겹겹이 칠했다가 박리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화면은, 그 자체로 고유한 지형을 이룬다. 물감은 때로 응집되고 다시 엷어졌다가 얼룩지고 희미해진다. 풍경을 고정된 상태로 붙잡아두지 않는 그의 화면에서 형상은 불현듯 떠올랐다 사라진다. 마치 자연의 성장과 소진, 침식과 퇴적 과정을 닮은 방식으로 재료를 다룸으로써 풍경은 계속해서 새롭게 재구성된다. 그렇기에 그의 풍경 속 형상은 늘 잠정적이며 언제나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원제목 ‘Míope’는 포르투갈어로 ‘근시’를 뜻한다. 이는 작가의 풍경에 등장하는, 초점의 경계에 아련하게 맺힌 듯한 특유의 형상들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다. 표제작 ‘편린’(Míope, 2026)의 화면은 분절된 식물 모티프로 뒤덮여 있다. 선명한 자주, 연보라, 황토색을 사용한 정교한 표현은 점묘법을 연상시키는데, 이 섬세한 붓질은 화면 전체를 감싸는 안개와 대비되어 흐릿한 부분과 극도로 선명한 부분 사이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일부 형상은 반복되고 중첩되며 마치 희미해지는 이미지를 붙잡으려고 애쓸 때 형상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대작인 ‘연’(Pipa, 2026)에서도 이와 유사한 공간적 긴장이 감지된다. 채도가 낮은 연분홍을 배경으로 덤불 같은 식생을 뒤덮은 구름의 형상이 화면의 중앙에 놓여진다. 처음에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이지만, 화면 곳곳의 자국은 잎과 씨방 그리고 줄기, 꽃 등을 연상시키며 구체적인 자연의 형상으로 확장된다. 그 결과 화면의 원근과 방향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그의 풍경화는 원근법에 기반한 시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수평선과 공간을 정의하는 지표들이 희미해지면서, 감상자의 시선은 불확실한 거리 감각 속에 놓인다. 작가가 고정된 하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화면의 깊이를 구성하는 서구의 선원근법적 논리를 탈피해 ‘위계적 공간 구조보다 관계적 공간 구조를 강조하는’2 동아시아적 공간 구성 방식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화면의 공간은 자국과 여백 사이의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전체를 지배하는 단일한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브로멜리아 게’(Bromélia Caranguejo, 2026)는 언뜻 기존의 관습적 공간 질서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루엣으로 표현된 잔가지들이 전경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 ‘너머의’ 풍경이 이내 시선을 혼란스럽게 한다. 녹색과 미색으로 구분된 면의 경계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수렴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화면의 깊이는 쉽게 포착되지 않지만, 물감이 칠해진 표면은 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작품들에서 작가는 스테이닝, 오일 스틱,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해 그것들이 긴 시간을 지나온 듯한 느낌을 연출한다. ‘엥무새 암컷’(Periquita, 2026), ‘달팽이’(Caracol, 2026), ‘타투라나’(Taturana, 2026)가 좋은 예다. 세 작품 모두 2026년작이지만 얼룩덜룩한 표면은 벗겨낸 낡은 벽지나 오래된 프레스코화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식에 관해 겹겹이 쌓는 행위와 걷어내는 행위를 오가며, 테레빈유로 희석한 안료가 번지거나 흘러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재료에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작품의 제목은 브라질 토착 생물종을 참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작가는 완전히 추상적인 화면에 동물의 깃과 털, 껍질, 광물질의 퇴적층 등을 연상시키는 물감 자국을 남김으로써 구체적인 대상을 개입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이 낳는 패턴의 반복성은 때로 직물에 가까운 성질을 띤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마나카’(Manacá, 2026)는 바느질 자국처럼 끊긴 선으로 유동적인 식물의 형상을 그려내며 직물의 촉감을 환기한다. 모티프와 배경이 하나로 압축되는 양식은 라인간츠의 예술에 영향을 끼친 프랑스 나비파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를 떠올리게 한다. 뷔야르의 회화에서 인물과 그가 있는 공간의 실내 장식과 벽지의 경계는 모호하게 처리되고,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는 대등한 관계에 있다. 작가는 이러한 불명확성을 한층 더 밀어붙여 반복되는 형태 자체가 지형의 성격을 띠도록 한다. 최근에 그는 패턴과 물질성에 관한 관심을 자수와 태피스트리로 확장해, 자신의 어머니와 우루과이의 공예가 호르헤 프란시스코 소토와 협업해 왔다. 자수 작품 ‘가을’(Outono, 2026)에서 바느질로 구현된 수평선들은 경작지의 고랑처럼 화면을 가로지르며, 하단으로 갈수록 대지의 색조를 띤다. 그 위에 산발적으로 흩뿌려진 듯한 형상들은 작품 제작 과정의 고되고 정교한 수작업이 무색할 정도로 자유롭다.
비록 그의 작품은 특정한 장소와의 관계성으로 규정되길 거부하지만, 브라질이 변함없는 준거임은 분명하다.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 브라질 자생 동식물종의 흔적과 브라질의 교외지역인 아라라콰라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 그리고 작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물성에 대한 작가 고유의 감각이 이를 보여준다. 유동적인 브라질의 지형은 하나의 안정된 풍경으로 제시되지 않는 대신 각 작품이 형태를 갖추어가는 물질적 과정에 내재한다. 마리나 라인간츠에게 풍경은 늘 이행하는 상태로 존재하고, 형상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영감의 원천인 대지가 끊임없이 변화와 재생의 과정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마리나 라인간츠는 1983년 브라질 아라라콰라에서 태어나 현재 브라질 상파울루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ICA 밀라노(2025–26), 뉴욕 보르톨라미 갤러리(2025), 프랑스 님 미술관(2025), 화이트 큐브(2023), 상파울루 포르티스 달로이아 & 가브리엘(2022), 클레르몽페랑 FRAC 오베르뉴(2021), 벨기에 제노 X 갤러리(2021), 도쿄 니치도 컨템포러리 아트(2016), 뉴욕 인디펜던트 프로젝트(2014), 상파울루 문화센터(2012), 마리아 안토니아 USP 문화센터(2011)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미술관 컬렉션과 단체전을 통해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대표적으로는 스톡홀름 모데르나 뮤제트(2025), 제14회 메르코수르 비엔날레(2025), 제15회 광주비엔날레(2024), 네덜란드 포를린던 미술관(2024), 즈볼러 뮤지엄 더 푼다치(2023), 아메르스포르트 쿤스트할 카데(2022), 브라질 리우 미술관(2020), 벨기에 돈트-데넨스 미술관(2018), 상파울루 이스타상 피나코테카(2018), 빌뉴스 리텍스포(2017), 아메르스포르트 쿤스트할 카데(2016), 상파울루 피보(2016),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컨템포러리 아트 파운데이션(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2015), 마이애미 컨템포러리 아츠 파운데이션(2015), 일본 기후현 미술관(2015) 등이 있다.
마리나 라인간츠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브라질 이뇨칭 미술관, 상파울루 이타우 컬처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 상파울루 주립 피나코테카, 파리 피노 컬렉션, 포르투갈 포르투 세할베스 미술관, 미국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네덜란드 스테델릭 미술관, 도쿄 타구치 아트 컬렉션, 런던 테이트 등 권위 있는 기관의 국제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작품
Marina Rheingantz
Míope, 2026
Marina Rheingantz
Manacá, 2026
Marina Rheingantz
Feather, 2026
Marina Rheingantz
Olha pro céu meu amor, 2026
Marina Rheingantz
Pipa, 2026
Marina Rheingantz
Seoul, 2026
Marina Rheingantz
Outono, 2026
Marina Rheingantz
Alvorada, 2026
Marina Rheingantz
Bromélia Caranguejo, 2026
Marina Rheingantz
Quiriquiri, 2026
Marina Rheingantz
Sad, tired and confused, 2026
Marina Rheingantz
Taturana, 2026
Marina Rheingantz
Caracol, 2026
Marina Rheingantz
Periquita, 2026
Marina Rheingan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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