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e Curtiss, Seoul (2025)
줄리 커티스
2025년 11월 5일 ~ 2026년 1월 10일
줄리 커티스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은 작가가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겪은 경험과 심리적 변화를 성찰한 결과물로, 전시 전반에 상징적인 주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유화, 종이에 그린 과슈 작업, 자연 옻으로 마감한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이번 작품을 통해 일상 속 어두운 그림자를 포착해낸다. 또한 화면 속 ‘혼종의 새 형상’을 통해 출산과 엄마 됨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실존적 자아실현의 서사를 펼쳐낸다. 이 새는 작가의 자아를 표상하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노동과 돌봄의 장면에 등장해 초현실적 아우라를 드리우기도 한다. 커티스는 가사와 재생산 노동에 결부된 성정치의 문제를 파고들면서도 특유의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 무게를 경쾌하게 비틀어 놓는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모두 빛과 어둠 그리고 버거움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면화(diptych) 형식의 ‘두 요람(Cradles, 2025)’은, 한쪽 면에는 하얗고 긴 드레스를 입은 두 엄마가 흑색 유모차 안의 아이를 돌보고 있고, 대칭되는 반대 면에는 두 엄마의 자리에 숯처럼 검은 부리를 한 펠리컨이 있다. 커티스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모성의 몸은 신화 속 생명체로 탈바꿈하고, 일상의 풍경은 무의식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재탄생과 되어감(becoming)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한편, 종이에 그린 단색조의 과슈 작업 ‘아기 요람(Bassinet, 2024)’에서 덮개의 천은 여린 바람에 나부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경계로 작용한다. 안에 잠들어 있는 아이는 우리의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재와 변형의 주제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내면 세계와 외적 현실이 만나는 곳이자 유아가 정신적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을 뜻하는 도널드 위니콧의 ‘전이적 공간(transitional space)’ 개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커티스의 신작에서 중심 이미지로 등장하는 펠리컨은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다. 기독교 도상학의 전통에서 펠리컨은 모성, 자기희생, 부활 등을 의미하고, 중세 연금술 문헌에서는 물질의 변형과 영혼의 양육을 상징했다. 펠리컨은 정신분석학 분야에서도 언급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카를 융은 내적·외적 힘이 끊임없이 맞물려 작용하는 과정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를 ‘순환적 증류(circular distillation), 이름하여 펠리컨’이라고 쓰기도 했다.1 ‘밤의 방문자(Nocturnal Visitor, 2025)’에서 어둠을 응시하는 펠리컨은 융이 말했던 ‘밤의 항해’를 연상시킨다. 몽환적인 이 작품은 어슴푸레한 무의식의 세계에 침잠한 상태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어쩌면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흔히 경험하는 수면 부족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펠리컨이 지닌 기존의 상징성을 확장하며 그 형상에 포식자의 본능을 지닌 넓적부리황새 이미지를 중첩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이 혼종의 새는 불온한 장난기를 풍기고, 악마적 기운마저 느껴진다. 모성애를 표상하면서도 기괴한 모습을 한 이 존재는 작가의 집을 점령하고 불안과 긴장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편, ‘외프 알 라 코크(Oeuf à la Coque, 2025)’는 아침 식탁 위 달걀 요리의 이미지를 통해 평범한 가정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다가, 곧 시선을 사로잡는 미끈한 손과 네일로 분위기를 단번에 에로틱하게 전환시킨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가사 노동의 여성화는 ‘대청소(Spring Cleaning, 2025)’와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 2025)’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후자의 작품에서 여인은 풀린 수유용 브래지어 사이로 왼쪽 가슴을 드러낸 채 거품기로 달걀을 휘젓고 있다. 이로써 작가는 가사노동에 내재한 성정치적 역학을 되짚으며, 돌봄, 봉사, 에로티시즘 등 여성성의 이상에 고착된 관념들을 성찰한다. 이러한 여성성의 이상이 가장 강렬하게 구현된 작품은 ‘기원(Origine, 2024)’이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1866년작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여성의 노출된 성기와 허벅지를 클로즈업한 구도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2016년작 ‘세상의 기원 따라하기(D’après l’origine du monde)’와도 맞닿아 있는 ‘기원’은 작가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대한 기록으로도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이미지는 잉태와 탄생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달걀이다. 하지만 작품 ‘깨진 (Cracked, 2025)’ 속 달걀은 반짝이는 숟가락이 부딪힌 자리에서 사방으로 균열이 번져 있다. 생명의 상징 위에 정신적 취약성의 암시가 겹쳐진 셈이다. ‘에코 (Echo, 2025)’는 이러한 내면의 균열이 궁극적으로 가져올 결말을 보여준다. 캔버스에는 음울한 분위기 속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이 마치 깨진 유리나 흐릿한 시야를 통해 본 듯 세 개로 조각나 있다. 이와 유사하게, ‘파편의 재조립 (Defragmentation, 2024)’에서는 얼굴 없는 두상들이 서로 겹쳐져 있다. 반면, ‘자아 (Self, 2024)’에 등장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 텅 빈 거울은 자화상의 가능성 자체를 말끔히 배제한다. 이처럼 모순과 긴장이 지배하는 커티스의 최근작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자녀 세대로 전이되어온 모성의 유산과 그것이 자아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임계점을 탐구한다.
이와 같은 자아의 불안정성은 주변의 사물로까지 확장되고, 작가는 각 사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익숙한 현실을 뒤집어 보인다. ‘공갈젖꼭지 (Pacifier)’, ‘대체품 (Substitute)’, ‘샘 (Fountain)’은 모두 2024년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유아용품이 비대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동심의 마법에 걸린 듯, 비례에서 벗어난 거대한 아기 용품은 ‘놀이’의 감각을 환기한다. 이는 위니콧의 영아 발달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사물의 과장된 스케일은 아기가 만지고 느끼며 놀이를 통해 외부 세계와 처음으로 접촉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위니콧은 아기가 ‘경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바로 놀이의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2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커티스는 말린 박을 소재로 한 조각 시리즈를 선보인다. 둥그런 형태와 다산의 상징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된 박은 작가의 손에서 장난감 같은 ‘공갈젖꼭지(Pacifier, 2025)’와 ‘막대 사탕(Lollipop, 2025)’으로 탈바꿈한다. 이번 전시의 지리적 맥락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는 전통적인 아시아 기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천연 옻을 사용해 조각 표면을 마감해 조각에 매혹적이고 광택 있는 질감을 부여했다. 표면을 감싼 마감재는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막을 형성해 유기적인 형태를 몽환적이고 빛나는 오브제로 전환시킨다. 이는 초현실주의적 장치를 활용해 일상의 평범함을 꿈에서나 본 듯한 이미지로 변환하는 커티스의 작업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상징과 내적 성찰, 그리고 묘하게 불안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통해 모성을 지닌 자아의 심리를 깊이 파헤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조각과 종이에 그린 과슈 작업은 일상의 사물을 매개로 불길한 예감과 환상이 교차하는 순간을 구축한다. 한편, 유화 작품에서는 무채색조가 몽환적 무게감을 자아내는 가운데, 응집된 색이 분출되며 화면을 밝힌다. 이 전시에서 커티스는 수많은 경계를 넘나든다. 외부 세계와 내면, 과거의 자아와 상상된 미래의 자아, 놀이와 에로티시즘을 가르는 경계 말이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융의 개념을 빌려 표현하자면, ‘존재(being)’의 상태에서 ‘되어감(becoming)’의 상태로 이행하고자 하는 욕망이다.3 갓난아기를 낳고 기르는 엄마 됨의 과정을 거치며 작업한 작품에서, 커티스는 내면의 모순과 정체성의 변형을 형상화하고, 자신 앞에 놓인 기나긴 ‘자아성찰의 여정’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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